탄핵심판도 ‘실명제’ 시대 - 세계일보 블로그

    지난 6월29일 법률 개정안 하나가 국회 본회의를 ‘조용히’ 통과했습니다. 바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입니다. 개정 내용 중 그나마 언론의 주목을 받은 부분은 ‘헌법재판관 전원을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대(對)사법부 정책을 놓고 ‘길들이기’니 ‘코드 인사’니 하는 말들이 많을 때였죠. 이 때문에 ‘탄핵심판에서도 소수의견 공개를 의무화 한다’는 개정 내용은 일반인은 물론 법조인나 법학자들에조차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야 이를 전해들은 한 헌법학자는 “언제 그런 개정이 이뤄졌느냐”며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불과 1년 전 노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소수의견 공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뜨거운 논란에 비춰 보면 다소 맥 빠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기자들의 집중적인 취재공세를 받고 있는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좌)과 주선회 탄핵심판 주심 재판관.


    헌법재판소가 맡는 심판은 위헌법률, 헌법소원, 권한쟁의, 탄핵, 위헌정당해산 등 총 5가지입니다. 전엔 이들 중 앞의 3가지에서만 재판관들의 소수의견 개진이 가능했습니다. 이에 비해 개정 법률은 그 36조 3항에서 “(모든) 심판에 관여한 재판관은 결정서에 의견을 표시해야 한다”고 명시, 탄핵심판이라고 해서 소수의견 공개의 예외가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지난해 헌재가 노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소수의견 비공개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을 때 재야 법조계와 일반 국민들은 “비민주적이며 비겁한 처사”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개정 헌재법을 반기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우리 시대의 ‘헌법 지킴이’ 이석연 변호사는 “최고 재판기관 구성원들의 의견은 모두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탄핵이 정치적 사안이라지만 헌재 또한 본질적으로 정치적 사법기관인 만큼 재판관들도 (정치적)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노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소수의견 공개’ 주장에 앞장섰던 인물이죠.

 

  ▲ 탄핵심판 소수의견 공개에 반대하는 서울대 법대 정종섭 교수(좌)와 찬성하는 이석연 변호사. 둘 다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오래 지낸 당대의 헌법 전문가로 차기 헌법재판관 물망에도 오르내린다.


    그러나 ‘탄핵심판 실명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습니다. 무엇보다 정치적 혼란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입니다. 차기 헌법재판관 후보로 거론되는 서울대 법대 정종섭 교수는 “소수의견이 많이 나오면 헌재 결정의 권위가 떨어져 대중의 반발도 심해지는 것이 상례”라며 “미국 연방대법원도 이 점을 우려해 민감한 사건에선 개별의견 표시를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관들이 권력자의 눈치를 보게 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정 교수는 “결과적으로 탄핵심판에 임하는 재판관들이 정권에 불리한 의견을 내기 어려워졌다”며 “개정 헌재법은 원래 의도와 달리 정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당초 노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소수의견을 공개시킴으로써 참여정부에 정치적 흠집을 낼 목적에서 추진된 법 개정이었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短見)에 불과했다는 것이죠.


    당사자인 헌재는 이에 대해 가타부타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헌재의 김경목 공보담당 연구관에 따르면 헌재는 법 개정 전에 국회로부터 의견서 제출을 요청받았지만 시한이 너무 촉박해 찬성이나 반대의 의견을 미처 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김 연구관은 “법 개정에 앞서 숙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비공식적 경로로 전달한 적은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무튼 앞으로 있을 탄핵심판에선 탄핵과 기각 의견이 몇 대 몇으로 갈렸는지 선고 직전 알아맞히기 위한 기자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됩니다. 물론 지난해 노 대통령 탄핵 사태와 같은 게 언제 또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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